나누는 마음이 변화의 동력으로 이어질 때

나눔이 사람들 사이의 연결에서 비롯된다는 것. 그 연결을 엮어가는 사람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일은 세상에 보이지 않는 빛을 심는 일일지 모릅니다. 이렇게 의미 있는 일을 기부에 참여한 한 사람 한 사람이 해내왔지요. 사회변화를 상상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현실로 만든 사람들. 1% 기부에 참여하는 이들의 선택은 옳은 목소리를 내는 변화의 시나리오에 참여한 시민사회단체의 활동력으로 세상에 드러납니다.

아름다운재단은 설립 20주년을 맞아 기부자와 단체가 연결돼 만들어낸 변화의 과정을 따라가봅니다. 우리생활 속 1%를 나누는 <1%나눔운동>에 참여한 기부자들과 기금을 바탕으로 변화의 시나리오 사업에서 성과를 이뤄낸 활동가를 만났습니다.

1%나눔 기부자

엄마 김윤희의 이야기 “도움의 순환, 기부가 만든 변화”

김윤희 기부자님

# 기부를 당연하게 여기고 해내는 마음

딸 다안이가 다섯살 되던 때였으니 오래 전 일이네요. 그래도 기부한 첫 날을 정확히 기억해요. 4월 14일. 다안이의 생일인 13일 바로 다음 날이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군자 할머니가 아름다운재단에 전 재산 5천만원을 기금으로 내놓은 이야기를 듣고서는 제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었어요. 아름다운재단에 저와 다안이, 막내 가람이 이름으로 기부를 시작했지요. 저희 가족의 기부가 뉴스로 취재되기도 했고요. 그 취재가 다안이의 1% 나눔기부 포스터 촬영으로 이어졌습니다. 아이 할아버지가 정말 뿌듯해 하셨어요. 경향신문에 실린 광고를 보고 전화를 해오시기도 하고요. 인쇄된 광고를 오려 벽에 붙여두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을 많이 하셨어요. 그런 소소한 순간이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삶에서 기부를 편하게 받아들였어요. 활동가로 일한 경험 덕분일 거에요. 남편도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가족 안에서 기부가 더욱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라던가, 관심 있는 세상의 여러 활동을 지지하기 위해 다양한 단체에 기부해 왔어요. 그중 아름다운재단에 꾸준히 기부했던 건 기관에 대한 신뢰감 때문이 커요. 기부금의 지원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과정을 봐왔고,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과 대화하며 어떤 마음으로 일하는지 느꼈지요. 저도 함께 공감하는 과정이 있었고요. 꾸준히 기부해온 제 모습을 보면서, 제 아이들도 기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자기 삶에서 직접 실천하길 바라요.

# 기부, 세상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일

작은 돈이긴 해도, 내가 보탠 기금이 활동하는 분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된다는 소식을 들으면 뿌듯해요. 제가 내민 작은 손이 나에 대한 도움으로 다시 순환되는 것 같고요. 기부에는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세상이 바뀌길 바라는 마음이 담기나봐요. 나 자신이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기 때문에, 육아와 활동가 일을 병행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시민단체를 지원하는 탁아기금에 기부하기도 했죠. 저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라 느꼈거든요. 그들이 활동가 일을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이 컸어요.

지금은 충북 괴산의 마을에서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생활하고 있습니다. 마을 안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동네 사람들 중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나서는 순간들이 생겨요. 기부이던, 혹은 다른 나눔의 형태던 내가 도움이 된다고 느낄 때 손 내밀게 되는 마음이 있어요. 저 또한 어떤 도움을 받기도 하고요. 서로가 서로에게 손내미는 순환. 세상을 선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작은 변화에요. 나눔을 자연스레 받아들인 우리가 함께 만든 거죠.

딸 이다안의 이야기 “나눔, 쉽고 가벼우면 좋겠어요”

이다안 기부자님

# 나누는 삶에 대한 영감을 나의 일상으로

다섯 살 무렵.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이 있어요. 지하철역에서 흑백의 제 얼굴이 광고판에 커다랗게 붙은 모습이에요. 아름다운재단에서 진행하는 1%나눔기부의 홍보 포스터 모델이 됐거든요. 놀라고도 좋았던 감각이 떠올라요. 지금 나이에도 포스터의 모델이 되면 신기해할 텐데, 어렸던 그때에는 그런 감정이 더 컸을 거에요.

기부 캠페인의 모델이 된 건 큰 경험이었어요. 그때 엄마는 제 생일을 기념할 겸 해서 저와 제 동생, 그리고 엄마의 이름으로 재단에 기부를 하셨다고 들었어요. 엄마는 지금까지도 저희 이름으로 아름다운재단에 꾸준히 기부를 이어오고 있어요. 활동가라는 직업으로 많은 일을 했던 엄마여서 그랬을까요? 저희 엄마처럼 기부하는 엄마를 많이 보지는 못 했어요. 적은 돈을 보내는 거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전해주는 게 쉬운 일일까요. 그 결정에 대한 엄마의 마음을 잘 알 수는 없지만, 꾸준히 기부하는 엄마를 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나도 돈을 벌고 나면 꾸준히 기부를 이어나가야겠다고 마음 먹었고요.

2005년 <1%나눔>캠페인 어린이 홍보대사 다섯살 이다안 기부자님 포스터

꼭 돈으로 하는 기부는 아니지만, 중학교 때 제가 할 수 있는 활동으로 주변과 뭔가를 나누는 경험이 생겼어요. 활동가이자 기부자로서 제 곁에 머물러준 엄마를 보고 자라서 그런가봐요. 아름다운재단 사업의 일환으로 지역 청소년들의 여행을 지원해주는 프로젝트에 응모해 직접 기획하고 친구들과 여행 내용을 짜고 실행에 옮겨보기도 했어요. 어릴 때는 또래 친구들과 뭔가를 기획할 기회가 잘 없잖아요. 그런 기회를 갖고 함께 의견을 내며 뭔가 시도해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엄마를 따라 충북 괴산의 마을에서 살았던 경험, 그 안에서 친구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함께 어울려 놀았던 시기를 거쳐 미술사학을 공부하는 대학생이 됐답니다.

# 기부는 어렵다? 쉽다!

최근에는 SNS에서 진행된 캠페인을 통해 기부에 참여했어요. 코로나 이후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의료인을 돕는 챌린지가 진행된 적 있는데요. 거기에 친구들과 적은 돈을 보탰죠. 얼마 안 되는 액수여도 몇백명 몇천명이 모이면 큰 돈이 되잖아요. 저희 같은 학생들에게는 편의점 몇 번 안 가면 모이는 돈이기도 하고요. 이런 식의 시도로 사람들이 기부가 어렵지 않은 일임을 알면 좋겠다고,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어릴적 시작된 저의 첫 기부는 알지 못한 채 시작됐지만, 오랫동안 기부하면서 나눔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기부에 대한 제 주관도 생기기 시작했죠. 기부가 사람들에게 가볍게 다가간다면, 좀더 다양한 방식이면 어떨까요? 기부란, 나눔이란 사실 일상적인 일 같아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요. 꾸준히 주변에 관심을 갖고 내가 나눌 수 있는 것을 찾는 일. 그 자체로 ‘내 안의 작은변화’이자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 함께 만든 큰 변화 같아요.

변화의시나리오 지원단체 활동가

부산여성회 정경애 활동가의 이야기 “연결 속에 더 커지는 변화”

# ‘듣는 사람’에서 ‘하는 사람’으로의 변화

95학번 대학생으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어요. 청년단체에서 활동하며 역사기행 사업을 활발히 해냈지요. 활동과 결혼, 육아와 출산의 경험을 거쳐 지금은 부산여성회 부대표로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고 성평등 활동을 해요. 주로 강좌 같은 교육사업을 꾸려왔습니다
여성회에서의 활동이 쌓이면서 목 마른 부분이 있었어요. ‘듣는 사람’을 ‘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일이었죠. 시민들이 스스로 활동가가 되어 세상의 변화에 주체로 참여하게 하고 싶었어요. 교육사업 방식으로 강좌만 듣고 가게 하면 사람들이 자연스레 활동에 대해 잊어버리더라고요. 그런 의미로 부산여성회에서 하게 된 사업이 ‘소녀상 평화올레길’입니다. 아름다운재단의 변화의 시나리오 프로젝트에 선정되기도 했지요.

2018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 앞에, 우리는 “부산 여성, 역사와 마주하다!” 라는 슬로건을 걸었어요. 세상에 오래도록 기억 돼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평화와 존엄을 바라던 피해자들의 이야기일 거라고, 그에 대한 믿음으로 부산 여성들이 나선 것이지요. 일제 징용의 역사를 기억하는 길을 걷고, 부산에 세워진 소녀상을 지키기 위한 여러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어요. 그 활동의 중심에는 여성들이 직접 우리의 역사를 기억하고 지키는 활동가로 성장하는 과정이 있었지요. 프로젝트에 참여한 여성들은 국립 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서 일제 수탈의 역사를 설명하는 해설사의 역할도 해냅니다.

해설사로 참여하는 분들이 ‘내가 해도 될까?’ 하며 주춤하기도 해요. 그럴 때 제가 하는 말이 있어요. “우리는 해설사지만 역사적 사실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전달하는 해설사가 되려고 한다. 본인의 진심을, 그 마음을 전달하는 해설사가 되면 좋겠다.” 게다가 이분들, 점점  자기 일에 진심으로 마음을 내어주더라고요. 아이에게 해설사 연습을 하면서 “엄마가 이런 걸 설명해볼 건데 한번 들어봐봐” 하며 해설 연습을 할 정도로요. 맡은 활동 속에서 자기 역할을 분명히 해내려 하는 것.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평화올레길을 함께 걸었던 부산여성회 회원들의 기행문을 읽으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그 글에서 평화올레길이 큰 의미로 다가가는 걸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자기의 언어로 역사의 해설사가 된 여성 활동가들. 올레길을 걸으며 앞선 역사를 스스로 관찰하고 해석하는 여성들. 누군가의 엄마나 딸 혹은 며느리로서 그늘에 가려졌던 그들이 사회의 구성원이자 자신의 주인이 되는 순간을 지켜보게 되지요.

부산여성회 정경애 부대표

# 우리의 활동이 옳다는 확신

소녀상 평화올레길 관련하여 아름다운재단과 온라인 캠페인인 ‘카카오같이가치’ 모금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부산여성회가 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지 대중과 공감을 나누며 소통하고 싶었거든요. 부산 동구청과의 마찰 등 유난히 우여곡절이 많았던 부산 소녀상에 대한 애정도 컸고요. 카카오같이가치모금을 진행하며 많은 힘을 받았습니다. 홍보에 힘이 부치는 시민단체에게, 아름다운재단이 활동을 널리 알리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고 느꼈어요. 그런 덕분인지 목표 모금액을 수많은 사람의 응원 속에 달성했어요. 모금 기간을 두달로 설정했는데 보름만에 해냈으니까요. 저희 부산여성회 활동가들이 모두 깜짝 놀랐어요. 우리 활동에 공감해주는 기부자와 활동가들. 이들과 어울리며 세상에 필요한 변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순간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해요. “응원합니다” “지지합니다” 카카오 같이가치 프로젝트 웹페이지에 달렸던 댓글들! 작은 응원이 여럿 모여 큰 의미로 다가왔던 순간이 뭉클하게 다가왔어요. 우리의 활동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 그 확신은 우리 스스로의 신념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지지와 응원이 너무 큰 힘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사람들의 변화, 여성의 변화. 나아가 정의로워지는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공동체가 되도록 하는 것. 부산여성회가 지향하는 목표이기도 하고,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하면서 좀더 힘을 받기를 원하는 부분이기도 해요. 실제로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위나 구호를 외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례가 지정되거나 정책연구가 뒷받침되도 좋고, 홍보 관련한 실무적인 도움도 필요하더라고요.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하면서 부산여성회의 활동에 힘을 실어줄 외부자원과 연계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간 부산여성회와 아름다운재단이 함께 하는 과정에서 얻게 된 경험치 덕분에 더욱 이런 역할을 기대하고 신뢰하게 되는 마음이 생기는 듯해요. 그 신뢰는 자연스럽게 저 또한 나눔에 동참하게 만들었고요. 아름다운재단에서 진행한 평화기념관건립 캠페인<기억할게 우토로>에는 저도 기부자로 참여했거든요. 기부활동을 알게 되니 자연스레 ‘나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옮겨갔어요. 부산여성회 안에서 각각의 구성원들이 서로 연결되고, 이제는 부산여성회와 아름다운재단과 기부자들의 연결 속에 나눔과 활동이 점점 커져가는 것. 이렇게 변화는 느리면서도 확실한 확장으로 다가온다고 느낍니다.

글 이상미/ 사진 이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