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터닝포인트, 희망가게로 희망을 공유합니다.

떡하니 버티고 선 벽을 눕혀 다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눕힐 수 없다면 손을 잡고 넘어가 보는 건 어떻겠느냐 청해볼 심산이었지요. 막다른 현실에 낙담해 주저앉고 싶을 때 생각나는 뒷심이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희망’이라는 단어를 꺼내들어 ‘창업’을 제안했습니다. 그렇게 2004년부터 시작한 사업이 한부모여성의 창업을 지원하는 ‘희망가게’입니다.

그로부터 17년이 흘러 창업한 희망가게가 무려 436곳으로 늘어났습니다. 경제적 자립이 절실한 한부모여성의 목소리에 응답하고 공감하며 부단히 지원한 결과입니다. 때론 버거웠을 모험과 도전을 마다 않은 용기 있는 한부모여성의 쾌거이기도 합니다. 삶의 전환을 이루는 시간이자 오롯한 자신의 이야기를 써나가는 공간, 희망가게. 화수분처럼 희망이 넘실거리는 그 시공간에서 한부모여성의 주체적 삶을 응원하며 ‘희망’을 공유한 두 사람, 희망가게 창업주와 기금출연기업 전 실무자를 만났습니다.

희망가게 51호점 창업주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희망가게

찬찬히 둘러봅니다. 어느 하나 제 손이 가지 않은 게 없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선택의 연속이던 창업 준비가 드디어 끝났습니다. 우두커니 매장 한가운데 서봅니다. 내일이면 또 다른 삶이 시작될 것입니다. 문득 사방에서 밀려드는 설렘과 뒤섞인 두려움에 움츠려지네요. 휘청거릴 만큼 밀어닥치던 크고 작은 사건에는 덤덤했건만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자각한 순간 무섬증이 일어납니다. 실패가 두려워서겠죠. 실패하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된다’, ‘잘해야 한다’ 되뇌는 순간 처음으로 소리 내어 울어 버렸습니다. 그것이 2009년 10월 25일 희망가게 51호점 ‘아름다운피부관리’를 창업한 윤정희 대표에게 오롯한 개업식 전날의 기억입니다. 이제는 성공한 희망가게 창업주의 후일담이 돼버린 12년 전 가을 어느 날의 안아주고픈 시작이기도 합니다.

Q. 희망가게 지원사업을 지원할 즈음 윤 대표님의 상황이 궁금한데요.

A. 돌아보면 홀로 서면서 걱정되는 건 단 하나, 직장에서 근무하면서 아이들을 키울 수 있을까, 언제까지 직장에 다닐 수 있을까, 였어요. 당시 제 나이가 마흔이었는데 월급만으로 애들 학원 하나 제대로 보내지 못할 때였거든요. 창업밖엔 답이 없는데 수중에 돈이 없었어요. 그때 우연히 아모레퍼시픽 소식지 『향장』에서 한부모여성 창업을 도와준다는 기사를 본 거예요. 나를 위한 지원사업인가 싶더라고요.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나, 생각하고 지원하려는데 서류를 보니 덜컥 겁이 났어요.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사업계획, 뭐가 뭔지도 모르겠는데 마감은 일주일밖에 안남았고 속이 탔죠. 방법이 있나요,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 아름다운재단에 전화해서 찾아가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제대로 묻고 직접 설명을 들어야 실수 없이 준비할 것 같았거든요. 다급한 마음에 달려갔는데 간사님께서 정말 친절하고 섬세하게 별표까지 쳐주시면서 설명해 주셨어요. 제출할 때도 우편으로 하지 않고 직접 찾아가서 한 번 더 검토해 달라고 부탁했죠. 그만큼 절실했어요. 그렇게 일주일을 온통 지원서류에 집중했더니 통과되더라고요. 마치 서울대학교에 합격한 기분이었죠. 이후 1차 인터뷰와 2차 심층면접 그리고 실기까지 거쳐 최종 지원대상으로 결정됐을 때 정말 날듯이 기뻤어요.

Q. 지원을 받아 <아름다운피부관리>를 창업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나요?

A. 10월 1일에 발표 나고 25일에 오픈했으니 창업까지 한 달이 채 안걸렸어요. 서류접수를 해놓은 다음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미리 좀 해뒀거든요. 재단에서는 좀더 여유를 가지고 창업하자고 권유했는데 저는 하루가 급했어요, 일도 못하고 시간만 지나면 나갈 돈을 생각하면 아찔했거든요. 마음이 급하다고 슬렁슬렁 허투루 하진 않았어요. 특히 사업장이 들어설 장소를 신중하게 정했고요. 처음에 계획했던 신림동이 아닌 방배동으로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컨설팅 선생님께 이야기하니 당황하시더라고요. 그리고는 브랜드 헤어숍도 다 무너져나가는, 연고도 없는 동네에서 버티기 어려우니 신림으로 알아보래요. 그런데 제 생각은 달랐어요. 7호선, 4호선, 2호선 접점지역이라 지인들이 온 사방에서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신도림을 가더라도 전혀 모르는 사람을 고객으로 유치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하진 않았죠, 적어도 초반에는요. 그래서 강력히 방배동을 밀어붙였는데 선생님도 완강했어요. 하는 수 없이 신청서에 적어둔 신림동 두 곳을 알아보았고 선생님과 함께 둘러봤어요. 이쯤 되면 그냥 전문가 말을 따르면 좋을 텐데 정말로 별 느낌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사정을 했어요. 방배동을 한 번만 더 봐달라고. 겨우 마음을 돌려 방배동으로 향했고 그곳을 둘러본 선생님께서 “어디가 가슴이 가장 뛰세요?” 물으시더라고요. 1초도 생각하지도 않고 “방배동입니다!” 답했죠. 그제야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고 저는 제가 원하는 곳에서 말 그대로 가슴 뛰는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거예요.

Q. 두려움과 무서움을 넘어선 용기… 짧은 시간이지만 만만치 않은 과정을 거쳐 창업을 하셨고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이후 달라진 게 있나요?

A. 가장 먼저 자존감이 달라졌어요. 지원이 그냥 아무나 해주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거든요. 아무에게나 돈을 주는 게 아니라 심사를 거쳐서 창업을 돕기 때문에 그에 대한 자존감이랄까, 자부심이 생기더라고요. 아모레퍼시픽도 그렇고 재단도 그렇고 저한테는 진짜 큰 후원자, 바람막이 같고. 덜렁 창업한 존재와 대기업이 나를 인정해서 창업을 지원해줬다는 것은 정말 다르죠. 그리고 또 하나가 ‘상상할 수 없었던 자유’입니다. 어쨌든 직장은 고용주 매뉴얼에 따라서 나를 맞춰야 하잖아요. 창업은 내가 만든 규칙에 나를 맞춰가는 거예요. 저 같은 경우는 직원들이 있으니까 그들이 나를 대신해서 일하는 시간을 활용할 수 있더라고요. 공부와 문화생활이 가능한, 직장에서 누리지 못했던 자유가 좋았어요. 물론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지만 그마저도 마음에 들었어요. 제 경우엔 창업 후 3년 정도 지나고 자리가 잡히니까 여유가 생겼고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거창한 건 아니고 서울시평생학습포털 인문학, 철학, 사회학, 글쓰기 공부를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죠. 창업 전에는 생각할 수 없던 자율적인 시간이 생겼고 때문에 공간 또한 주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스스로 결정하고 내 주도 하에 내가 만들어내고 책임지는 주체적인 움직임이 오롯하게 내 자신이 드러날 수 있는 시공을 만든 거죠.

희망가게 51호점 ‘아름다운피부관리’ 윤정희 대표

Q. 희망가게는 ‘창업 대출, 컨설팅뿐만 아니라 재무교육, 심리상담 등 창업주를 위한 지원도 이뤄지는데요. 이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건 무엇인가요?

A. 많은 일들이 스쳐 지나네요. 정말 모든 게 다 소중하고 고마웠거든요. 그럼에도 한두 개만 꼽자면, 재단 간사님 한 분이 제 블로그를 만들어주신 거예요. 우리 집에 올 때마다 사진도 찍고 제 스토리를 넣어 동영상을 만들어서 블로그에 올리셨고 재단에서 광고도 넣어줬죠. 그런가 하면 재단에서 희망가게 창업자 눈높이에 맞춰 진행하는 마케팅 교육도 특별해요. 우린 돈이 많아서 창업한 게 아닌 영세사업자잖아요. 필요한데도 자원이 없어 업그레이드 할 수 없는 부분, 특히 마케팅 요소를 지원해 줄 때 참 고마워요. 특히 마케팅 강의는 들을 때마다 새롭고 스스로를 뒤돌아보게 만들더라고요. 앞으로의 10년을 어떻게 준비해야할까 생각하는 계기도 되고요. 음, 그러니까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후관리겠네요. 그저 창업을 지원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운영에 어려움은 없는지, 더 나아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이후에도 늘 함께 고민하고 응원해주는 게 재단이거든요. 기쁜 일, 슬픈 일을 같이 나눌 지지자로 존재하는 누군가. 그것보다 더 인상적인 건 없을 거예요.
Q. 11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자영업이 위태로운 지난 시간, 지속가능한 사업을 이끌고 있으신 비결이 있으신가요?
A. 시작할 즈음 누군가 “10년만 하면 누구나 베테랑이 될 수 있어”라고 덕담을 해주셨는데 그 말이 제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어요. 예전엔 이사를 많이 다녀서 한곳에 1~2년 길어야 3~4년 머물고 이사를 다녔거든요. 이사 갈 때마다 사람들과 헤어지는 게 가슴이 아팠던 게 떠오르면서 창업할 때 그런 목표가 생겼어요. 한 자리를 지키자. 내 목표는 큰돈을 벌기보다 한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는 것이다! 지키다보면 무슨 성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어려운 일 있을 때마다 스스로를 다잡았죠. 그렇게 11년을 방배동에서 지낸 거예요. 요즘 그 시간의 가치를 새록새록 느껴요. 한 업종을 한 곳에서 오래했다는 자체가 자부심이 되고, 신기하게도 그게 마케팅의 한 요소가 되기도 하더라고요.
Q. 희망가게를 지원하고 싶은데 여러 이유로 주저하는 분들에게 한말씀해주시죠.
A. 간혹 희망가게를 지원하고 싶어서 제 가게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사업계획서를 같이 써보기도 하고 먼저 경험한 선배로 조언도 해주는데 그렇게 다 준비하고서도 서류를 제출 못 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래서 왜 그러냐 물으면 주변에서 정말 많이 반대한다고 토로해요. 돌아보면 저도 그랬어요. “지금 이 불경기에 무슨 창업이냐”, “실패하면 어떡하려고 그러느냐”, “안정적인 직장이 낫지 않느냐”, 고 발목을 붙들죠. 하지만 저는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도전해보지 않으면 늘 그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실패하면 어때요. 실패해도 배우는 것들이 분명히 있어요. 해보고 또 두드려보고 그러다보면 이만큼 성장해있는 자신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희망가게는 그 도전을 응원하는 고마운 지원사업입니다. 인생에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쉽게 오진 않잖아요. 그런데 ‘희망가게’는 자기 자신에게 줄 수 있는 ‘도전할 기회’예요. 그렇게 자신을 확인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희망가게를 준비하면서 자신이 가야할 길인지 아닌지를 확실하게 볼 수 있으니까요.
Q. 이제는 재단의 기부자이기도 하시죠?
A. 만 원부터 시작하다 조금씩 늘려나가고 있어요. 내 가족이 나를 돌봐주지 않을 때 저한테 손을 내밀어줬던 재단이기 때문에 늘 마음 한편에 ‘나는 언제 기부자가 되지?’, ‘나는 언제 남한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시작하고 나니 그게 별 게 아니더라고요. 시작하기 전에는 크게 해야 하나, 많이 해야 하나, 이렇게 작은 게 도움이 되려나, 고민도 좀 했는데요. 지날수록 기부는 크고 작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아요. 시작이 전부랄까요. ‘시작’은 지지와 응원, 변화를 바라는 의지이고 ‘기부’는 그 실천이잖아요. 그건 마치 언땅을 뚫고 싹을 틔우는 숱한 식물과도 같아요. 그래서 기부를 시작하는 것 그 자체로 이미 많은 것을 바꾸는 거라고 믿어요.

희망가게 100호점 기념 <희망가게. 두 개의 상(像)> 사진집 (조선희 작가, 2011) 윤정희 대표 모습

Q.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윤 대표님이 꿈꾸는 미래, 바라는 세상이 정말 궁금해지는데요.
A. 11년 전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콘셉트를 가지고 피부관리실을 시작했어요. 그 생각은 변함이 없는데 다만 더 다양한 방법으로 더 많은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요즘 관심을 가지는 건 인큐베이팅 시스템이에요. 최저시급과 4대 보험 등의 문제가 얽히면서 초보기술자들이 일할 기회가 줄어들고 있거든요. 기술자·경력자 월급과 별 차이가 없으니 고용주 입장에서는 굳이 리스크를 짊어질 이유가 없죠.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한의 경력을 쌓을 수 있는 3개월에서 6개월, 길어야 1년 정도의 지원이 필요한데 그 길이 막히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면 인큐베이터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요. 필요한 적시에 도움을 받은 저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잖아요.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던 희망가게를 경험했으니까요.

전 아모레퍼시픽 CSR 팀장 강승성

지속가능한 희망가게로 한부모여성의 미소를 짓다

2003년 6월, 한부모여성의 경제적인 자립을 지원하는 <아름다운세상기금>이 조성됐습니다. ‘우리 사회 가난한 어머니들과 그 자녀들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길’ 바란 故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선대회장의 유지와 고인에 대한 유가족의 존경이 담긴 기금은 한부모여성의 ‘희망가게’ 창업을 지원하며 올해로 17년째 진행 중입니다. 2005년부터 아모레퍼시픽 사회공헌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팀에 합류한 강승성 팀장은 2004년에 창업한 1호점을 필두로 430여점의 희망가게 내외부를 적극 지원하며 회사를 떠나기 전인 2020년 12월까지 16년을 같이 지내왔습니다. 성공과 실패를 오가는 도전과 모험이 켜켜이 쌓인 지원사업을 속속들이 알기에 혹시라도 매너리즘에 빠질까봐 매번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그에게서 아모레퍼시픽과 아름다운재단이 함께 한 <아름다운세상기금>과 ‘희망가게’의 역사와 미래를 들었습니다.

Q. <아름다운세상기금>이 마련된 계기와 여러 NGO 단체 중 아름다운재단을 지원사업 파트너로 결심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A. 어머니의 미소를 늘 그리워하시던 아모레퍼시픽 선대회장님께서 늘 바라셨던 게 생계를 직접 꾸려나가는 이 땅의 어머니들께 희망을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유지를 받들어 2003년 <아름다운세상기금>이 마련됐습니다. 당시 꽤 큰 돈을 출연하는 저희에겐 그 취지를 온전히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수행할 지원사업 파트너가 필요했고, 국내 존재하는 몇몇 NGO를 모색하다 아름다운재단을 선택했습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저희와 아름다운재단의 비전이 잘 맞았거든요. 특히 지원 대상자를 수혜자가 아닌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려는 재단의 조직문화, 겸손하지만 단호하고 섬세한 정서적 접근이 인상적이었죠. <아름다운세상기금>의 대상자가 한부모여성이기에 더욱 고민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Q. 일회성이거나 구체적인 결과가 드러나는 기부가 아닌, 마이크로크레딧 방식의 사업에 50억 원 출연이 당시로서는 굉장한 모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A. 선대회장님과 그 유가족분들에겐 기업의 사회공헌만큼이나 중요한 게 사회복지 관점, 역량과 강점을 강화하는 지원이었습니다. 물고기를 잡아다주는 것이 아닌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사업이요. 아름다운재단에서 그에 맞춘 다양한 사업을 제안했고 그 중 창업프로그램 ‘희망가게’가 선택된 거예요. 중점을 둔 건 선순환 관점으로 지속가능한 사업이었고, 우리는 그것을 꿈꾸는 한부모여성의 시드머니가 되길 바랐죠. 무함마드 유누스 총재의 그라민은행(Grameen Bank) 마이크로크레디트(microcredit·무담보 소액대출)는 재단과 함께 더 나은 방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겁니다. 한부모여성의 자립, 주체적인 삶에 초점을 뒀기에 단순한 대출을 넘어선 보다 장기적이고 통합적인 지원을 계획했습니다.

전 아모레퍼시픽 CSR 팀장 강승성

Q. 오랫동안 희망가게 지원사업을 담당하시면서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사례, 순간이 있으셨나요?
A.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모든 창업주님은 인상적이십니다. 그분들과 함께하며 순간순간 어떤 확장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럴 것이다’, 라고 가늠했던 틀을 넘어서는 거죠. 이를테면 어머님께서 하실 거라고 전혀 생각 못한 사업, 2006년 창업한 ‘드림피아’라는 희망가게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산업 폐기물에서 부품을 추출해 재활용하는 자원선순환 사업인데 큰 연장 들고 뭔가 절단하고 그런 작업을 여성이 하리라고 생각 못했으니까요. 같은 해 8호점 창업이었던 개인택시업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머니’라는 대상이 할 만한 뻔한 직종을 상정한 결과였겠죠. 자연스럽게 저마다의 욕구에 부합하는 다양한 사업을 발굴해야 겠구나, 생각했습니다.
Q. 다양한 사업을 발굴하기 위해 특별히 진행한 사업이 있나요?

A. 희망가게 업종을 다양하게 만들기 위해 ‘내가 하고 있는 업종을 창업을 꿈꾸는 다른 한부모여성에게 전수해주는 전수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초기에 저희는 창업주들이 돈을 더 잘 벌 수 있는 프랜차이즈를 생각했는데 재단은 *‘전수창업’이라는 사업방향을 제안했죠. 그걸 나누면서 우리가 놓친 것을 알게 됐어요. 창업주는 바쁘게 많은 돈을 벌기보다 자신의 자녀와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원한다는 걸 새삼 느꼈던 거예요. 물론 개개인의 차이도 있고 일대일로 만나 전수하는 작업이 쉽진 않았죠. 하지만 희망가게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도전과 모험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엔 현재를 진단하고 향후 어떻게 희망가게를 재구성할지 고민 중입니다. 2025년 전까지는 구체화해서 또 다른 시드머니를 출연해야 겠죠.

*희망가게 전수창업: 10년 이상 가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선배 창업주가 창업을 꿈꾸는 후배 창업주에게 핵심기술과 경영노하우를 전수하는 사업으로 2017~2018년 시범적으로 운영했다.

Q. 재단과 기업의 다름을 인지하고 인식이 확장된 결과가 시드머니 소진 후 사업 지속이라니 그 의지가 신선합니다.
A. 희망가게 지원사업을 시뮬레이션하면 2027-2028년에 시드머니가 소진됩니다. 나눔의 선순환을 지향하는 희망가게인데 어떻게 시드머니가 사라지나 의아하실 수 있어요. 희망가게의 경우 창업주의 건강 문제, 지리적 요인, 예기치 않은 시장 변화 등으로 폐업이 불가피한 경우가 생기거나 사업을 진행하면서 추가로 한부모여성 창업주 정서 지원, 건강검진 지원, 커뮤니티 운영 등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 비용들을 감안하면 시드머니는 소진될 수밖에 없죠. 하지만 희망가게는 아모레퍼시픽 임직원의 자긍심일 뿐 아니라 한부모여성 창업주를 응원하는 지원사업이니까 더 노력할 겁니다. 나아가 마이크로크레딧 한국형 사업의 롤모델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2025년까지 제2의 사업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 아모레퍼시픽 CSR 팀장 강승성

Q. ‘지속가능’에 초점을 둔 제2의 지원사업 구상이라니, 희망가게는 한부모여성에게 정말 든든한 뒷심이겠어요. 그런데 올해처럼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19라는 변수로 소상공인이 위태로울 땐 지속가능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것 같은데요.
A. 저희에게는 두 축의 목표가 있는데 그 하나가 ‘희망가게 성공모델 만들기’이고 또 다른 하나가 ‘희망가게 창업주의 역량 강화’입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더 고민하는 게 오프라인 매장 외의 대안과 어머니들이 감당할 수 있는 사업을 가늠해 균형을 맞추는 거예요. 이번에 아모레퍼시픽에서 코로나19로 어려움에 놓인 희망가게 소상공인을 돕는 팝업 스토어를 본사 5층 아모레가든에서 진행했는데, 그때 필요하다고 느낀 게 카드단말기, 배달, SNS 대응 등 이제와는 다른 영업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 창업 전 역량을 키우는 교육사업이 더 보강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시대에 맞는 창업 욕구를 가진 한부모여성 창업주분들도 분명 계실 텐데 그 부분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리라고 봅니다. 새로운 희망가게 모델을 설계할 때 고려할 생각이에요.
Q. 변신할 희망가게와 그 과정이 무척 기대되는데요. 그간 함께하고 앞으로 다시 팀워크를 이룰 아름다운재단에 기대하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A. 우리나라 시민단체의 태동을 이끌어왔던 조직에 걸맞는 아름다운재단의 장점은 업과 조직에 대한 자긍심 그리고 지원대상에 대한 사려 깊은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사업도 책임감 있게 잘 수행해주셔서 항상 만족감이 큽니다. 다만 마이크로크레딧이 시스템적으로 준비가 돼야 하는 사업이다 보니 사회연대은행, 미소금융과 같은 체계가 있으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제2의 희망가게 버전을 함께 만들어가기를 바랍니다.
Q. 마지막으로 아모레퍼시픽이 희망가게를 통해 꿈꾸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A. 현재 희망가게가 436호점을 넘었으니 창업 도움이 필요한 한부모여성의 약 1.5%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추세로 사업을 진행한다면 2027~8년이 되면 2.5%로 오르겠죠. 그렇게 희망가게가 늘어갈수록 미소 짓는 어머니가 많아지고 그로써 그들의 아이 또한 한껏 웃을 수 있는 세상, 그것이 선대회장님의 유지를 받들어 만들어진 아름다운세상기금의 존재 이유입니다. 당연히 아모레퍼시픽이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이고요. 그러기 위해 우리가 사회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정확하고 면밀하게 바라보도록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겠습니다.

글 우승연/ 사진 이지환